03 질문은 비록 실패했지만
최근 그래미 어워즈를 운영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멤버로 선정이 되었다. 선택보다도 ‘합격'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의 시작도 질문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이어진 레코딩 아카데미 멤버십 디렉터와의 화상통화. 통화의 안건은 나의 지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다른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30분의 이야기 끝에 내가 물었다.
“우리, 한번 협업해보면 어떨까?”
사실은 우리가 협업해야 할 이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는 이미 미국팀에서 그녀와 일을 하고 있고, 나는 한국을 담당하는 매니저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음 회의를 또 잡았다. 그때는 업무 논의를 할 수 있는 다른 담당자를 소개해주겠다며. 그렇게 이어진 몇 번의 통화 끝에 제안을 받았고, 눈을 뜨니 나는 이미 멤버십에 지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합격 통보를 받았다. 어쩌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사실 협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론짓고 싶지는 않으니 잠정 보류라고 해두겠다. 그렇다면 협업을 이끌어내지 못했으니 나의 질문은 무효했던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멤버가 되면서 더 많은 일을 꾸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회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갑자기” 와버리기도 한다.
“That’s a really good question.”
질문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실은 나 말고도 모두 궁금해 하고 있었다는 것. 내 질문이 발표자에게도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것. 내 질문은 나를 보여준다. 회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인지, 나의 이해도는 어떤지, 나의 언어 스킬은 어떤지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다. 사장님 앞에서도 질문하는 것, 부사장님의 발표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것, 팀원에게 더 날카로운 피드백이 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더 요구하고 더 질문하는 사람에게 오는 일종의 마법 같은 기회를 몇 번 만난 후 나는 되도록이면 모든 회의에서 한 번씩은 꼭 질문하려고 한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질문일지 고민한다. 나에게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그 질문은 무엇을 담아야 할지 생각한다. 무엇을 질문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하지만 그 가치를 모두가 알아봐 주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상사가 내게 한 말이다. 궁금함은 조금 참아두는 것은 어떠냐고, 기존에 일어나는 일을 완성시키는 것에 집중해 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하셨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화가 났다고 쓰고 눈물을 글썽였다고 읽는다. 창피하다.) 내 궁금함을 가치가 아닌 방해로 여기는 상사와 어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현재 나는 ‘신'사업 개발 매니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