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때문이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사회의 기준과 속도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 로컬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자기답게 일하고 싶었고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고 싶었던 나에게 로컬이란 단어는 일종의 유토피아였다.
실제로 와서 경험해본 로컬은 상상했던 유토피아였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삶은 느리고 여유롭게 흘러갔지만 일은 바쁘고 치열하게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일할 때 나에게 가장 치열한 영역은 ‘일’이었는데, 그건 목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소가 바뀌었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배웠다. 일은 늘 나에게 가장 맹렬한 영역이다.
로컬에서 남 부럽지 않게(?) 맹렬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돈이 없어서 끼니를 넘기거나 빚을 내서 회사의 위기를 무마하기도 하면서 5년을 버텼고, 지금도 쉬는 날 없이 노트북을 끼고 사는 사람, 바로 공장공장의 박명호 대표다. 지금까지는 공장공장의 소도시 창업 이야기를 ‘창업’, ‘자금’, ‘조직’을 주제로 해서 자세히 들어보았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파트인 ‘로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박명호 대표는 연고 없는 로컬에 정착해서 버텨온 경험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인터뷰어: 김혜원(공장공장 콘텐츠 기획자)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로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유와 나다움이라는 키워드가 연상되는데요, 명호 씨는 로컬에 가기로 했을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셨어요?
▶︎ 저는 여유로움보다는 기회가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여유롭게 일하기 위해 목포로 온 건 아니었거든요. 기회를 찾아온 거죠. 그런데 살다 보니 기회가 많기 때문에 여유가 생기거나 풍요로워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느낌이 좋은 유휴 공간을 만나 며칠 만에 매입을 결정하기도 했다.
명호 씨의 로컬 창업은 여러모로 제 생각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로컬 창업이라고 하면 나답게 일하며 여유로움을 추구하거나, 연고 있는 지역에서 가업과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명호 씨는 연고 없는 곳에서 무형의 비즈니스를 시작하셨어요.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셨나요?
▶︎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만들어가고 싶었어요. 역량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자리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콘텐츠나 브랜딩이 아니라 요식업에 자신 있었다면 식당을 했을 거예요.
수도권에서 창업하는 것과 지방 소도시에서 창업하는 건 무척 다른데요, 아무리 물가가 저렴하다고 해도 사업에는 큰돈이 들어가잖아요? 로컬에서 사업하기 위해 자금은 얼마나 준비하셨어요?
▶︎ 목포 오기 전에 제주에서 진행했던 ‘한량유치원’ 프로젝트 할 때 1천만 원 정도 지인에게 빌렸고요, 목포에 와서는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2천만 원 정도 대출해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 이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대출을 받았고요.
대출이 가능하던가요?
▶︎ 돈은 없었지만 신용은 좋았거든요(웃음). 다만 이렇게까지 대출을 계속 받을 줄은 몰랐죠.
살아남기 위해 용역을 받았고, 일을 벌이고, 제안했다.
로컬로 삶의 터전을 옮겨서 사업할 때에는 사업 자금뿐만 아니라 정착 자금과 생활비도 필요하죠. 보증금이나 월세 같은 정착 자금이나 생활비는 얼마나 들었어요?
▶︎ 거의 안 들었다고 보시면 돼요. 왜냐하면 저와 공동창업자 동우 씨 둘 다 돈이 거의 없었거든요. 합쳐서 100만 원도 없었을 거예요. 숙박은 무상으로 제공 받은 여관 건물인 ‘우진장’에서 해결하고, 밥은 주로 해 먹었어요. 돈이 없어서 하루 한 끼 먹을 때도 있었죠. ‘우진장’을 빌려주신 강제윤 시인님이 현금을 손에 쥐여 줄 정도였어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네요. 어떻게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을까요?
▶︎ ‘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기회를 찾아내서 잘 될 거라고 말이죠. 그리고 저나 동우 씨나 돈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런 사람은 아니어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어요. 일이 들어오면 열심히 해서 돈 벌고, 돈이 생기면 필요한데 쓰고요.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몸으로 때웠어요. 건물 철거도 직접 하고, 페인트칠도 직접 했죠.
몸으로 때우던 시절(feat. 동우 씨)
초기에 그렇게 고생해서 자리잡고 5년 이상 목포에서 사업을 해오셨는데요,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장점은 뭐예요?
▶︎ 이건 소도시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목포 원도심의 특성인데요, 웬만한 데는 다 걸어 다닐 수 있어요. 바다, 산, 관광지, 맛집, 편의시설 등을 도보로 다닐 수 있죠. 공장공장은 원도심에 있어서 회사도 걸어갈 수 있고요.
주거나 교통 측면에서 좋은 점도 있을까요?
▶︎ 상대적으로 주거비도 저렴해요. 괜찮은 34평 아파트도 전세가 1억 4천만 원이면 빌릴 수 있어요. 월세도 20~30만원 선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고요. 교통도 편리한데요, 목포 원도심에 있는 목포역에서 KTX 타면 서울까지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어요. 제주도는 배 타고 종종 가는데 목포항에서 배를 탈 수 있어서 접근성도 나쁘지 않고요.
저도 목포 원도심에 살기 때문에 무척 공감 가네요. 반면에 어떤 점이 아쉬우세요?
▶︎ 트렌드를 익히려면 대도시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해요. 만나는 사람도 제한적이어서 더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하고요.
지방에 사는 청년들이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문화 인프라인데요, 문화를 누리는 측면에서 아쉬운 점은 없으세요?
▶︎ 문화적인 건 아쉬울 수밖에 없더라고요. 문화 인프라가 있더라도 서울과 다르거나, 다양성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목포역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했어요. 인근 대도시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요. 제가 목포에 오기 전에 제주에서 자리잡고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요, 교통이 안 좋아서 거의 모든 걸 포기하게 되었는데 그게 아쉽더라고요.
생활인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창업가 입장에서도 로컬에서 일을 벌이면서 느끼는 아쉬운 점이 있으실 것 같아요.
▶︎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좋은 커뮤니티가 있으면 사람이 모일 것 같아서 ‘괜찮아마을’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지역이다 보니 투자자들에게 인지도가 낮은 점도 아쉬워요. 브랜딩을 통해서 시장성을 증명해야 하죠. 지역 문화를 수용하고 지역 커뮤니티에 소속되어야 하는 점은 성향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어요.
좋은 사람을 모으려고 ‘괜찮아마을’을 직접 만들어버렸다.
이런 아쉬운 점들을 감내하고서라도 로컬에서 사업을 계속 해오셨는데요, 로컬에서 창업하면서 느낀 장점은 뭔가요?
▶︎ 로컬에서는 사업적 기회를 조금만 확보해놓으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요. 폭발적인 성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요. 그리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지역의 시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고요. 로컬이 아직 대도시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몇 년 전의 대도시 아이템을 로컬에 적용만 해도 비즈니스가 만들어지기도 하죠. 물론 요즘에는 로컬에서도 트렌드를 선도하는 콘텐츠가 많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지만요. 추가로, 심리적으로 조금 더 편한 부분도 있어요.
최근에 ‘로컬에 기회가 있다’라는 말이 많이 들리는데 명호 씨도 ‘기회’라는 단어를 쓰시네요. 명호 씨 생각에는 로컬에 어떤 기회가 있다고 보시나요?
▶︎ 아까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는 게 단점이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뒤집어보면 기회가 되기도 해요.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이 몰려있는 서울에서는 ‘서울의 누구’가 되기는 어렵지만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는 ‘목포의 누구’가 되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거든요. 유휴공간이 많아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요.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로컬에 자금이 투자될 구조이기 때문에 먼저 와서 깃발을 꽂고 선점해두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기겠죠.
기회의 땅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로컬로 이주하는 걸 망설이는 이유가 여럿 있을 텐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텃세인 것 같아요. 처음 목포에 정착하셨을 때 텃세는 없었나요?
▶︎ 딱히 그런 쪽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그냥 평소처럼 행동했어요. 만나면 인사하고, 초대해주시면 가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을 저는 좀 어려워하는 편인데 공동창업자인 동우 씨는 그렇지 않아서 동우 씨가 많이 맡아줬어요. 다만 저희에 대해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부당한 대우를 할 땐 적극적으로 대응했죠.
업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관계도 만들고 일도 받고 할 텐데, ‘공장공장이 목포에서 사업을 시작한다’고 알리는 일은 어떻게 하셨어요?
▶︎ 공장공장 정체성에 맞게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고 발행했어요. 외부 영상 감독님한테 의뢰해서 다큐멘터리 영상*도 찍고, 이야기를 활용해서 채용설명회도 진행했죠. 고객사가 될 수 있을 곳에는 먼저 연락하거나 영업해서 일을 따오기도 했고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우리가 먼저 작게 시도해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나중에 용역으로 제안하기도 했어요.
*김송미 감독에게 의뢰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상 ‘공장공장 x 낯설게 하기’ 1편 (링크)
해보고 싶었던 일을 먼저 해보고 사업으로 제안하는 구조가 흥미로운데요, 그런 사례로 어떤 사업이 있나요?
▶︎ ‘지방에서 왔습니다’라는 사업이었어요. 서울 밖에서 변화를 만드는 로컬 플레이어들을 서울의 한복판에 모아서 소개하고 교류하는 네트워크 행사였는데요, 이 행사는 ‘괜찮아마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했어요. ‘괜찮아마을’은 6주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각자의 성과를 발표하는 행사를 진행했거든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묶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보면서 주제를 ‘로컬’로 바꿔서 기획해봤어요. 이 취지를 잘 이해해주시는 곳에 제안을 해서 용역으로 ‘지방에서 왔습니다’라는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죠.
서울에 로컬 플레이어를 모은 행사 ‘지방에서 왔습니다’
어떤 곳에 제안할지 아는 것도 능력인 것 같아요. 목포 밖에 있는 회사나 사람들과는 어떻게 네트워크를 만드셨어요?
▶︎ 로컬에 플레이어가 많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됐어요. 행사나 소개로 만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환경이나 상황이 비슷하다 보니 서로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받기도 하죠. 공공 영역에서는 저희가 해온 일을 보고 먼저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요청이 오면 적극적으로 협업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요.
어떤 일이든 좋은 면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면도 있네요. 자신이 어떤 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로컬에서의 삶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인터뷰는 드디어 마지막 인터뷰가 되는데요, 5년 넘게 로컬에서 버텨온 스타트업의 남은 로컬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로컬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때문이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사회의 기준과 속도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 로컬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자기답게 일하고 싶었고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고 싶었던 나에게 로컬이란 단어는 일종의 유토피아였다.
실제로 와서 경험해본 로컬은 상상했던 유토피아였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삶은 느리고 여유롭게 흘러갔지만 일은 바쁘고 치열하게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일할 때 나에게 가장 치열한 영역은 ‘일’이었는데, 그건 목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소가 바뀌었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배웠다. 일은 늘 나에게 가장 맹렬한 영역이다.
로컬에서 남 부럽지 않게(?) 맹렬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돈이 없어서 끼니를 넘기거나 빚을 내서 회사의 위기를 무마하기도 하면서 5년을 버텼고, 지금도 쉬는 날 없이 노트북을 끼고 사는 사람, 바로 공장공장의 박명호 대표다. 지금까지는 공장공장의 소도시 창업 이야기를 ‘창업’, ‘자금’, ‘조직’을 주제로 해서 자세히 들어보았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파트인 ‘로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박명호 대표는 연고 없는 로컬에 정착해서 버텨온 경험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인터뷰어: 김혜원(공장공장 콘텐츠 기획자)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로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유와 나다움이라는 키워드가 연상되는데요, 명호 씨는 로컬에 가기로 했을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셨어요?
▶︎ 저는 여유로움보다는 기회가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여유롭게 일하기 위해 목포로 온 건 아니었거든요. 기회를 찾아온 거죠. 그런데 살다 보니 기회가 많기 때문에 여유가 생기거나 풍요로워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느낌이 좋은 유휴 공간을 만나 며칠 만에 매입을 결정하기도 했다.
명호 씨의 로컬 창업은 여러모로 제 생각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로컬 창업이라고 하면 나답게 일하며 여유로움을 추구하거나, 연고 있는 지역에서 가업과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명호 씨는 연고 없는 곳에서 무형의 비즈니스를 시작하셨어요.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셨나요?
▶︎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만들어가고 싶었어요. 역량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자리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콘텐츠나 브랜딩이 아니라 요식업에 자신 있었다면 식당을 했을 거예요.
수도권에서 창업하는 것과 지방 소도시에서 창업하는 건 무척 다른데요, 아무리 물가가 저렴하다고 해도 사업에는 큰돈이 들어가잖아요? 로컬에서 사업하기 위해 자금은 얼마나 준비하셨어요?
▶︎ 목포 오기 전에 제주에서 진행했던 ‘한량유치원’ 프로젝트 할 때 1천만 원 정도 지인에게 빌렸고요, 목포에 와서는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2천만 원 정도 대출해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 이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대출을 받았고요.
대출이 가능하던가요?
▶︎ 돈은 없었지만 신용은 좋았거든요(웃음). 다만 이렇게까지 대출을 계속 받을 줄은 몰랐죠.
살아남기 위해 용역을 받았고, 일을 벌이고, 제안했다.
로컬로 삶의 터전을 옮겨서 사업할 때에는 사업 자금뿐만 아니라 정착 자금과 생활비도 필요하죠. 보증금이나 월세 같은 정착 자금이나 생활비는 얼마나 들었어요?
▶︎ 거의 안 들었다고 보시면 돼요. 왜냐하면 저와 공동창업자 동우 씨 둘 다 돈이 거의 없었거든요. 합쳐서 100만 원도 없었을 거예요. 숙박은 무상으로 제공 받은 여관 건물인 ‘우진장’에서 해결하고, 밥은 주로 해 먹었어요. 돈이 없어서 하루 한 끼 먹을 때도 있었죠. ‘우진장’을 빌려주신 강제윤 시인님이 현금을 손에 쥐여 줄 정도였어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네요. 어떻게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을까요?
▶︎ ‘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기회를 찾아내서 잘 될 거라고 말이죠. 그리고 저나 동우 씨나 돈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런 사람은 아니어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어요. 일이 들어오면 열심히 해서 돈 벌고, 돈이 생기면 필요한데 쓰고요.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몸으로 때웠어요. 건물 철거도 직접 하고, 페인트칠도 직접 했죠.
몸으로 때우던 시절(feat. 동우 씨)
초기에 그렇게 고생해서 자리잡고 5년 이상 목포에서 사업을 해오셨는데요,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장점은 뭐예요?
▶︎ 이건 소도시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목포 원도심의 특성인데요, 웬만한 데는 다 걸어 다닐 수 있어요. 바다, 산, 관광지, 맛집, 편의시설 등을 도보로 다닐 수 있죠. 공장공장은 원도심에 있어서 회사도 걸어갈 수 있고요.
주거나 교통 측면에서 좋은 점도 있을까요?
▶︎ 상대적으로 주거비도 저렴해요. 괜찮은 34평 아파트도 전세가 1억 4천만 원이면 빌릴 수 있어요. 월세도 20~30만원 선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고요. 교통도 편리한데요, 목포 원도심에 있는 목포역에서 KTX 타면 서울까지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어요. 제주도는 배 타고 종종 가는데 목포항에서 배를 탈 수 있어서 접근성도 나쁘지 않고요.
저도 목포 원도심에 살기 때문에 무척 공감 가네요. 반면에 어떤 점이 아쉬우세요?
▶︎ 트렌드를 익히려면 대도시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해요. 만나는 사람도 제한적이어서 더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하고요.
지방에 사는 청년들이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문화 인프라인데요, 문화를 누리는 측면에서 아쉬운 점은 없으세요?
▶︎ 문화적인 건 아쉬울 수밖에 없더라고요. 문화 인프라가 있더라도 서울과 다르거나, 다양성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목포역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했어요. 인근 대도시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요. 제가 목포에 오기 전에 제주에서 자리잡고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요, 교통이 안 좋아서 거의 모든 걸 포기하게 되었는데 그게 아쉽더라고요.
생활인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창업가 입장에서도 로컬에서 일을 벌이면서 느끼는 아쉬운 점이 있으실 것 같아요.
▶︎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좋은 커뮤니티가 있으면 사람이 모일 것 같아서 ‘괜찮아마을’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지역이다 보니 투자자들에게 인지도가 낮은 점도 아쉬워요. 브랜딩을 통해서 시장성을 증명해야 하죠. 지역 문화를 수용하고 지역 커뮤니티에 소속되어야 하는 점은 성향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어요.
좋은 사람을 모으려고 ‘괜찮아마을’을 직접 만들어버렸다.
이런 아쉬운 점들을 감내하고서라도 로컬에서 사업을 계속 해오셨는데요, 로컬에서 창업하면서 느낀 장점은 뭔가요?
▶︎ 로컬에서는 사업적 기회를 조금만 확보해놓으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요. 폭발적인 성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요. 그리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지역의 시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고요. 로컬이 아직 대도시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몇 년 전의 대도시 아이템을 로컬에 적용만 해도 비즈니스가 만들어지기도 하죠. 물론 요즘에는 로컬에서도 트렌드를 선도하는 콘텐츠가 많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지만요. 추가로, 심리적으로 조금 더 편한 부분도 있어요.
최근에 ‘로컬에 기회가 있다’라는 말이 많이 들리는데 명호 씨도 ‘기회’라는 단어를 쓰시네요. 명호 씨 생각에는 로컬에 어떤 기회가 있다고 보시나요?
▶︎ 아까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는 게 단점이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뒤집어보면 기회가 되기도 해요.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이 몰려있는 서울에서는 ‘서울의 누구’가 되기는 어렵지만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는 ‘목포의 누구’가 되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거든요. 유휴공간이 많아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요.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로컬에 자금이 투자될 구조이기 때문에 먼저 와서 깃발을 꽂고 선점해두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기겠죠.
기회의 땅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로컬로 이주하는 걸 망설이는 이유가 여럿 있을 텐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텃세인 것 같아요. 처음 목포에 정착하셨을 때 텃세는 없었나요?
▶︎ 딱히 그런 쪽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그냥 평소처럼 행동했어요. 만나면 인사하고, 초대해주시면 가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을 저는 좀 어려워하는 편인데 공동창업자인 동우 씨는 그렇지 않아서 동우 씨가 많이 맡아줬어요. 다만 저희에 대해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부당한 대우를 할 땐 적극적으로 대응했죠.
업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관계도 만들고 일도 받고 할 텐데, ‘공장공장이 목포에서 사업을 시작한다’고 알리는 일은 어떻게 하셨어요?
▶︎ 공장공장 정체성에 맞게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고 발행했어요. 외부 영상 감독님한테 의뢰해서 다큐멘터리 영상*도 찍고, 이야기를 활용해서 채용설명회도 진행했죠. 고객사가 될 수 있을 곳에는 먼저 연락하거나 영업해서 일을 따오기도 했고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우리가 먼저 작게 시도해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나중에 용역으로 제안하기도 했어요.
*김송미 감독에게 의뢰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상 ‘공장공장 x 낯설게 하기’ 1편 (링크)
해보고 싶었던 일을 먼저 해보고 사업으로 제안하는 구조가 흥미로운데요, 그런 사례로 어떤 사업이 있나요?
▶︎ ‘지방에서 왔습니다’라는 사업이었어요. 서울 밖에서 변화를 만드는 로컬 플레이어들을 서울의 한복판에 모아서 소개하고 교류하는 네트워크 행사였는데요, 이 행사는 ‘괜찮아마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했어요. ‘괜찮아마을’은 6주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각자의 성과를 발표하는 행사를 진행했거든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묶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보면서 주제를 ‘로컬’로 바꿔서 기획해봤어요. 이 취지를 잘 이해해주시는 곳에 제안을 해서 용역으로 ‘지방에서 왔습니다’라는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죠.
서울에 로컬 플레이어를 모은 행사 ‘지방에서 왔습니다’
어떤 곳에 제안할지 아는 것도 능력인 것 같아요. 목포 밖에 있는 회사나 사람들과는 어떻게 네트워크를 만드셨어요?
▶︎ 로컬에 플레이어가 많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됐어요. 행사나 소개로 만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환경이나 상황이 비슷하다 보니 서로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받기도 하죠. 공공 영역에서는 저희가 해온 일을 보고 먼저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요청이 오면 적극적으로 협업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요.
어떤 일이든 좋은 면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면도 있네요. 자신이 어떤 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로컬에서의 삶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인터뷰는 드디어 마지막 인터뷰가 되는데요, 5년 넘게 로컬에서 버텨온 스타트업의 남은 로컬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 부록 ㅣ 그날의 노트
2019년 6월 2일 by.박명호
이 낯설고 쉽지 않은 일상,
실패하고 실수할지라도 회복하겠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그 고민과 도전을 쉽지 않은 환경, 낯선 지역에서 계속 반복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역량에 대한 자신이 있어서 사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먼 내일까지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이 의지라면 허무하게 실패하진 않을 테니까.
"어쩌면 내일이 마지막일지 몰라,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걸 하자."
이 낯설고 쉽지 않은 일상,
실패하고 실수할지라도 회복하겠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그 고민과 도전을 쉽지 않은 환경, 낯선 지역에서 계속 반복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역량에 대한 자신이 있어서 사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먼 내일까지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이 의지라면 허무하게 실패하진 않을 테니까.
"어쩌면 내일이 마지막일지 몰라,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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